HOME > 선돌/ 암각화 > 선돌 신앙! 되다

 

소재지: 대한민국 전북 고창/전남 진도

선돌이 고인돌과 동일시대부터 축조 되었음을 유추하게 하는 분포 양상입니다. 이 선돌들은 (묘)표지석인 성격처럼 보인다. 죽은 사람을 상징하거나 무덤을 표시하는 무덤돌의 기능 같다. 선돌이 세워진 시기는 선사시대부터 최근까지 계속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다수의 선돌들은 조선시대에 세워졌다고 보아야 할 듯 합니다. 그럼에도 일반적 의미의 선돌은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의 새워진 것을 말하며, 이른 선돌들은 고인돌과 같은 시기인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만들어졌지만 그만큼 또 많이 살아져 갔듯합니다. 그리고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선돌들은 선돌 자체의 기원뿐만 아니라 고인돌의 기원을 접근하는데 분명히 하나의 실마리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56호/충북 옥천군 독이면 석탄리

선돌은 마을 입구에 세워 재앙을 막는 수문신 또는 마을의 풍년과 평안을 기원하는 수호신의 신계로 믿어진다. 그 형태는 커다란 화강석을 곧추 세운 장대형 자연석이며, 청동기 시대 큰 돌 문화재의 하나이다. 안터마을 선돌은 주변에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묘표석이거나 기념비, 조상신의 성격을 띠고 있는 듯 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선돌을 할머니라 부르며 때때로 간소한 제사를 올려 소원을 빌기도 한다. 선돌의 중간 부분에슨 쪼기 방법으로 지름이 90cm되는 둥근원의 기하학 무늬를 그렸다. 이것은 임산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이는데, 생산과 출산과 연관되어 해석되어지고 있습니다. 원래는 대청댐 수몰지역에 있었으나 대청댐 공사시 이곳으로 옮겨 놓앗다. 선돌의 지상 높이는 195cm, 너비 92cm, 두께 54cm이고, 지하에 65cm 묻히고 있다. 선돌 밑부분은 화강암의 앞뒤면을 매끄럽게 대칭적으로 손질하였고, 선돌을 세울 때 지렛대를 이용한 구덩이 자리가 발견되었다.

전북 민속자료 제 7호

전북 김제시 입석동

이 돌기둥은 마을을 수호하는 상징적인 조각품으로 벽골재를 기념하기위해 백제 시대에 세운 거이라 여겨진다. 사각 기둥으로 높이는 214cm이고 너비는 40~48cm정도이다.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날 밤이면 인근 마을 사람들이 남녀로 나뉘어 줄다리기를 하고, 사용한 동아줄을 이 입석에 감아 놓는다고 한다. 줄다리기에서는 여자편이 이겨야 그 해에 풍년이 든다고 전하고 있다. 돌기둥에 감아 놓은 동아줄에 손을 대면 죽는다는 속설도 있다. 이선돌의 위쪽에는 사람 같기도 하고 사자 같기도 한 얼굴 모양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고 하나, 연중 대부분 동아줄에 감겨 있어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경북 기념을 29호/ 경북 칠곡군

지천면 창평리 산 103

입석은 선사 시대 거석 기념물로써 주로 지역간의 경계를 나타내거나 신앙의 대상물로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입석은 지석묘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숫자에 지나지 않으나,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선사 시대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이 입석은 높이 약4.5m 밑둘레 약 2m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입석 가운데 큰 규모에 해당한다. 입석의 동편 주위을 개간할 당시 무문토기, 석기 등이 발결된 바 있어 이 입석이 청동기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석면에 남면에는 후대에 "나무아비타불" 이라 각자한 글이 남아 있는데 이는 선사시대의 유적도 불교의 종교적인 대상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순천 내우 선돌

주암댐 수몰지역인 순천시 송광면 우산리 내우 마을 당산나무 옆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해 놓은 것이라 한다. 마을 사람들은 괴석이라고 부르고 잇으나 남성 성기의 모양을 형상화하고 있어 성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다. 원래는 반구형으로 돌무지를 쌓고, 그 위에 선돌 2개가 있었으나 1개는 없어지고 1개만 남아 있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당산나무에서 당산제를 지냈는데 이 때 선돌에도 금줄을 치고 따로 상을 차려 제사를 지낸 헌식 의식도 하였다 한다.

우측은 전북 순창 팔덕면에 있는 선돌인데 당산나무인 느티나무 옆에 있습니다. 생김새나 구조상 순천 내우 선돌과 동일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선돌은! 선사시대 이후 어떤 문화와 만나느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한다. 위의 남근석들은 어떤면에서 선돌과 남근 사상의 결합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일 좌측은 전북 순창 팔덕면 창덕리 남근석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중앙의 것은 산동리 남근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 남근석 모두 유사한 전설이 전해지며, 이러한 이유로 만들어진 듯 합니다. 그 속설을 보면 "남근석은 자손이 귀하거나 아이를 낳지 모하는 여자들이 제를 올리면 어린애를 가질 수 있다"는 속설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이 남근석들은 대략 1500년대에 청상과부로 지내던 한 여인이 두개의 남근석을 치마에 싸 가지고 오다가 너무도 무거워서, 한 개는 창덕리에 세우고 다른 하나는 산동리에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매우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남근석은 연꽃 무늬를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점들이 독특하다고 한다. 매년 정월 보름이면,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인들과 또 남자 아이를 갖기 원하는 임산분들이 이곳에 치성을 드린다고 한다. 마지막 우측에 있는 남근석은 논 쟁기질을 하다가 나온 유물인데, 나온 장소가 옛날에는 움푹 들어가 음?이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음산함을 상충하기위해서 말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이외에도 선돌은 다양한 문화와 만나는데.......

이 선돌은 마을 입구에 있는 쌍 형태로 존재하는 선돌 중에 하나이다. 다른 선돌과는 살짝 엇비껴 새워져 있지만 조만간 그 이미지를 다시 담을 것을 약소드리며.......

현대화와 과학화로 수 많은 전통들이 살아졌듯, 이 선돌과 당산나무에 행해졌었을 숯이나 고추등이 들어간 동아줄을 감는 행위나 오색 종이는 더이상 많은 곳에서 두루지 않는다. 이땅에 중장비가 들어오기 전, 드넓은 야산들이 개간되지 않고, 신작로가 들어오기전의 옛 모습을 상상해 본다. 큰 마을에서 큰 마을로 이동할 때에 마을 어귀에 당산 나무와 함께 꼭 쌍으로 선돌이 새워져 있었다. 하나는 크고 뾰족한 경우가 많으며,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 작고 둥그럽다. 이는 다시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성과 연관지은다. 왜? 마을 입구에 새워져 있었을까? 이 곳을 지나면 곧, 마을이 있다는 이정표이며 안심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이곳을 지나면 신성한 곳이니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들어 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나 더 추가 한다면,신앙적으로 악귀나 재앙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두 상징적으로 다가갈 수 밖에 없으며, 선돌이 신앙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특별한 신앙적 믿음이 있건 없건 가끔 그런 길을 상상하며 걸어가 보자.

 

top

[fcdolmens.com]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