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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 서있는 돌; 입석(立石 menhir; standing stone)으로 불려진다. 그리고 “ 삿갓바위[笠巖]·입암(立巖)이라고도 부르며, 지역에 따라서는 구지바위· 할머니 탑· 할아버지 탑· 돌장승· 수구막이” 등으로 불린다. 선돌은 고인돌과 함께 한국의 선사시대 거석문화의 훌륭한 지표이다. 고인돌과 동시대의 문화이며, 고인돌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소재지: 대한민국 전북 순창
* 선돌 구조!

선돌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좌측 선돌은 논두렁 가장자리에 있어 상당부분의 선돌 하부 구조가 노출되어 있다. 우측에 남아있는 흙을 걷어 낸다면, 선돌 하부구조가 그대로 노출되겠지만, 전체적으로 보여지는 부분에서 우리는 우측 하부구조를 투영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선돌은 고인돌과 동시대의 문화이며, 고인돌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고인돌에 담긴 문화는 발굴 조사를 통해 구조적, 유물적으로 많은 연구가 있어 왔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시대상을 이해하려 노력해 가고 있다. 하지만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구조가 상대적으로 단순하여, 구조 및 유물적으로 이렇다 할 자료는 부족한 실정이다. 말 그대로 토속, 신앙적, 외형적 형태를 통해 나름 의미 있는 접근이 이루어져 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선돌에 대한 이해는 구체적이기 보다는 추상적인 점이 많이 차지하고 있지만 남겨진 모습에서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소재지: 대한민국 경기 양주

경기도 양주시 회천읍 옥정리 627-1, 산 94-1 /문화재자료 제 89호

조금 떨어 져 있지만 홀로 있지 않아 외롭지 않은 선돌입니다. 바로 인접한 선돌의 측면이 각이 있게 다듬어 졌다고 한다면, 이 선돌은 상대적으로 곡선 형태로 다듬어 졌습니다. 양 선돌의 공통점은 위쪽이 비교적 뽀족하게 다듬어진 특징이 있습니다.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세워질 당시에는 전형적인 시골마을 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문화재로 등록되어 보호 되고 있으며, 풍수와 관련되어 축조 되었다는 설과 신선의 계시에 따라 세워졌다고는 설이 있습니다. 역시 하나의 설로 인정되어지지만, 왜? 이곳에 선돌을 세웠는지는 주변지역의 번잡한 개발에 의해 확인하기 쉽지 않습니다.

좌측 선돌은 높이 3.15m 너비 0.5m 두께 0.4m/능선 가장 자리에 있으며, 우측 선돌은 높이 3m 너비 0.55m 두께 0.45m이며, 마을 입구의 평지에 있다.
소재지: 대한민국 경기 여주

우측 선돌은: 경기도 기념물 제 132호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석우리 260 번지에 있으며, 높이 2.45M 너비 0.6m 두께 0.8m 입니다.

현재 양어장 옆에 서 있지만, 옛날에 이곳이 들판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흐르는 금당천과 들판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선돌의 북쪽 마을은“ 담모랭이” 남쪽 마을은 “돌담”이라고 불리는데, 1914년 이곳이 도제였던 점을 감안할 때 이 선돌의 기능은 하나의 경계 표시였을 가능성이 많다. 한편 이 선돌은 마귀할머니의 지팡이라고도 하며, 선돌 앞쪽에 있는 넓적하고 두터운 바위에서 마귀할머니가 물레를 돌리며 실을 감았다는 이야기도 전해 오고 있다. 최근까지도 마을 사람들이 음력 정월 보름에 선돌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좌측 선돌은: 경기도 기념물 제 133호: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처리 산 647-3

들판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낮은 구릉지에 있으며, 그 후에 주변에 콘크리트 회사가 들어 왔을 것이다. 선돌 앞으로는 남한강의 샛강인 청미천이 흐르고, 화강암 질 편마암으로 된 이 선돌은 전체적으로 넓적한 느낌은 준다. 선돌의 윗부분은 손질한 흔적이 뚜렷하며 아주 매끈하게 다듬어 놓았다. 이 선돌 바로 앞에는 넓적한 돌이 놓여 있는데 이것은 선돌에 제사 지낼 때 제단으로 이용하였던 것 같으며, 물을 바라보는 자세로 세워져 있어 선돌이 숭배의 대상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높이 2.1M 너비 1.55m 두께 0.3m 입니다.

소재지: 대한민국 전북 순창

선돌 분포 양상: 그들은 왜? 꼭 그곳에 세워져 있었을까? 세상의 만물은 돌멩이 하나가 되었던, 흙 한줌이라도 그곳에 있는 데는 자연적 또는 인위적 원인이 있다. 사람에 의해 세워진 선돌도 그곳에 세워진 데에는 시대를 불문하고 분명한 이유나 목적이 있을 것이다.

선돌의 공간적 분포 양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인돌과 바로 인접하여 있는 경우와 고인돌 주변에서 100~200M 이내에 있는 경우가 있으며, 오래된 마을 입구에 쌍으로 있는 경우와 정자 및 누각이 있는 큰 나무 근처에 있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독립적으로 홀로인 경우와 도심 한 복판 또는 변두리에도 있으며, 논 또는 밭두렁 경계에 있다.

좌극 선돌들은 한 지역에 가장 많은 선돌들이 분포하고 있는 전북 순창 팔덕면에 있습니다.

경기도 용신시 지방문화재 향토유적 22호/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사암리 753-2

폭 1m, 두께 03.~0.4m, 길이 2m 원통형 돌기둥을 세 쪽으로 쪼개어 만든 듯하다. 세 개의 선돌을 마치 환상열석처럼 나란히 세워 놓은 모습이 독특하다. 선돌에 세워져 있어 선돌뱅이로 불리고 있는 이곳 근처에 고인돌이 몇 기 있지만, 사암리 세자매 선돌은 선사시대의 유물이 아닌 근 현대사에 세워진 듯한 느낌을 준다.

한국민속촌의 전통 문화 마을 입구에 있는 선돌이다.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달랐던 1970년대 초반의 선돌에 대한 인식을 보여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마을 입구에 선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지금도 흔하지 않게 선돌은 마을 입구에 있는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민속촌은 경기 이남지방의 전통 가옥 및 대장간, 한약방, 글방 등이 구현되어있어, 전통 문화를 보러 온 많은 이들에게 선돌에 대한 인식을 심어 주었을 것입니다. 1974년에 준공된 한국 민속촌 앞의 선돌은 70년데 선돌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사극 촬영에 종종 이용되어져 많은 이들에게는 선돌에 대한 현대적 이미지로 남겨져 있습니다.

경북 문화재 자료 제 184호/ 경북 구미시 진평동 627-1

이 선돌은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이다. 쾌혜암 이라 새겨진 글자 때문에 "신 걸이 바위"라고도 한다. 조선 선조때 인동 현감으로 부임한 이등림이 선정을 베풀고 임기가 끝나 돌아갈 때, 한 여자 시녀?가 아전에게서 짚신 한 켤렐르 받은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 돌에 걸어 두고 떠난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공직 사회 귀감을로 삼았다고 합니다. 쾌혜암 옆에는 '출호암"이라 불리는 선돌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대정기념비"라 새긴 것을 광복 이후 지우고 " 대한민국건국기념비"라 새긴 이 선돌은 인동에 관아가 설치될 무렵 풍수지리적으로 고을을 이롭게 하고 고을을 넘겨다보는 도둑을 막기 위해 끌어다 세웠다고 합니다. 이 선돌은 선사시대인의 삶의 자취를 보여주며, 조선시대 청백리의 미담도 담은 전설의 기록물이라 한다.

충남 보령 주산면 동오리 선돌/높이 260cm, 너비 100cm, 두께 50cm?

지방이 바위로 불리기도 한, 선돌에 알구멍이 있다하여, 어느날 새벽에 출발하여 아침 일찍 다았던 동오리 선돌이다. 하지만 알구멍은 아닌 듯하다. 일명 성혈 또는 알구멍으로 불려지는 이들은 분명히 인공적인 모습을 담고 있지만 이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과거에는 바다에서 그리 멀지 않았으며, 현재는 인근에 바로 보령댐이 있으며 충적지의 가장자리 마을에 들어갈 때 쉽게 눈에 들어 온다. 어떤 이는 성과 관련하여 이 선돌을 설명하기도 한다. 주변에 고인돌로 소개되는 마당바위가 있으나 고인돌인지 장담을 할 수가 없다. 참고로 보령에는 충청도 지역에서도 고인돌이 많이 남아 있는 곳 중에 하나이다.

고인돌 덮개돌 선돌이 되다. 전북 순창군 팔덕면 구룡리에는 10여기 이상의 선돌이 반경 1Km내에 분포하지만, 선돌을 얼마나 숭배해서인지? 고인돌 덮개돌 조차 선돌처럼 세워 놓은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혹자는 이를 선돌로 오해를 할 수 있겠으나, 분명한 고인돌 덮개돌로 보면 됩니다.

 

1: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2s020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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