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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은 선사인을 포함한 우리 선조와 대화 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선사인은 문자는 남기지 못하였지만 그들의 바위 언어를 고인돌에 남겼다.
소재지: 대한민국 전북 고창

성혈은 바위 위의 구멍이다. 알 구멍 또는 바위 구멍으로 불리고 있으며,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도 ‘컵 마크’ (cup marks)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성혈은 전국 어디에서나 또는 세계 어디에서나 확인되는 모습으로 대부분은 고인돌에서 확인이 되고 있고 드물게 고인돌이 아닌 선돌이나 산 정상의 거대 바위 및 암반 또는 주변의 석물에서 확인이 된다.인위적인 거석 물이나 자연 상태의 거대 바위에서도 확인이 되고 있다.성혈의 크기와 형태는 대부분 불규칙적으로 존재 하지만 드물게 규칙적으로 존재하는 모습에서, 밤 하늘에 떠 있는 별자리를 고인돌에 수 놓은 것이라는 학설이 최근에는 제기되고 있다.

소재지: 대한민국 경남 함안&경북 포항
좌측의 고인돌은 크기가 제 각각인 알구멍이 400여 개 가까이 존재한다. 지금은 함안 박물관 내에 있지만 동촌리 고인돌 27기중 26호로 알려져 있다. 안내판은 자식 낳기나 풍년을 기원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나아가 서로 잘 연결하면 별자리를 나타낸 느낌이라 적고 있다. 우측 고인돌은 조그만 야산 중턱에 놓여 있다. 위에 올라 가면 바로 동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풍부한 어획을 희망 했을지, 아니면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라며 태양신에 간절한 소원을 담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이는 풍년을 기원 했으며, 어떤 이는 다산을 기원 하며, 또 어떤 이는 별자리를 의도적으로 남겼을 지도 모른다. 성혈을 이어주는 선은 어떻게 보면 팔 다리를 벌려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이나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재지: 대한민국 경남 함안

* 동심원 그림- 링 마크 (Ring Mark)

함안 지역 고인돌에서 확인된 성혈(性穴)과 동심원 그림이다.바위 면을 쪼아서 구멍을 파고, 굽 안쪽을 갈아서 모양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동심원은 원의 형태가 정연한 것으로 7개의 크고 작은 것이 확인되는데, 동심원은 바위그림이 분포되어 있는 거의 전지역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이는 태양을 상징하여 풍요를 기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재지: 대한민국 전북 고창/전남 영광

말마 자(馬)의 한자를 사용하는 이 마을은 마래 (馬來) 마을에 있는 말(5斗) 바위로 불리는 고인돌이다.
이 고인돌의 덮개 돌에 곡물을 측량하는 도구인 도량형이 파져 있다. 실제 25cm 내외의 사각형 홈인데, 우리가 요즘 사용하는 한 말 (斗) 의 단위는 아닌 듯 하다.

이 마을에 사는 한 할아버지는 오래된 옛날 단위의 말이라는 말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각의 네 귀퉁이는 방위각인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소재지: 대한민국 전남 화순
춘양면 대신리(大薪里)에서 가장 큰 고인돌은 덮개돌이 7.3m × 5m ×4m 되는 크기로서, 220톤에서 290톤에 달하는 매우 커다란 집채만한 바위 덩이가 세워져 있다. 이는 핑메바위 고인돌로 명명되어 있는데 무게로 볼때 세계 최대의 고인돌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장군바위’, 또는 ‘핑메바위’라고 부르는데, 핑메는 돌팔매질을 말한다. 전설에 의하면 마고 할메가 치마폭에 돌을 싸 가지고 운주사로 가다가 치마폭이 터져서 그냥 놓고 간 돌이 이 바위라는 것인데, 지금은 비록 땅 속에 파묻어 볼 수 없지만 영일 흥해읍 금장동에 줄지어 있었다던 줄 돌들도 이와 비슷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이 고인돌에는 ‘여흥민씨 세장산 (麗興閔氏世葬山)'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민씨 가문이 대대로 묘소를 쓰는 선산이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소재지: 대한민국 전북 고창- 뒷들의 고인돌과 돌담 그리고 대나무
고인돌은 축조시에 일반적 무덤으로 만들어 졌지만 그 이후에 어떠한 문화가 들어 오느냐 그리고 누가 어떻게 활용 하느냐에 따른 각기 다른 흔적을 남겼다. 이제 볼수 없지만 왼쪽 고인돌은 돌담의 일부로써 당당히 자리 메김 하고 있으며, 우측 고인돌들은 훼손되지 않고 누각이 들어와 있다. 근 현대화 되기 이전에는 거의 모든 고인돌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농사를 짓더라도 고인돌 만큼은 피하여 옥토를 일구었으며, 고인돌 자체를 훼손한 경우는 거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근 현대화 되고, 중장비가 들어온 이후에 이러한 모습을 찾아 보기는 힘들다.


4 국립 문화재 연구소 : 영일·경주 지역의 바위그림( 한형철, 한국의 바위그림, 한국역사민속학회, 1996), 월성군·영일군 지표조사 보고(이건무 외, 국립박물관 고적조사보고 17, 1985) 5 한 말 (斗)은 약 열 되(升) 이며 이는 18 리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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